함을 되작인다. 빛바랜 소품이 속절없이 흐른 시간처럼 누워있다. 줄이 풀린 악기와 미완성의 그림, 사진첩이 담겨 있다. 상자를 정리하다가 시선이 머문다. 책장 모서리에 옆구리만 보이는 낡은 이젤이다. 한쪽 다리는 기다리다 지친 듯 벽에 기대 있고, 다른 한쪽은 엉거주춤 중심을 잡고 있다. 쓰다만 수채화 물감과 부러진 연필은 일상이 멈춘 추억의 방에 굳은 채로 놓여 있다.미술용품을 들추다 빛바랜 스케치북을 들고 달뜬 마음으로 바닥에 주저앉는다. 말없이 과거의 추억을 붙잡고 있는 내 가슴이 꿍꽝거린다. 단발머리에 교복을 입던 시절의 설